꽤나 예전에 사놓고 묵혀놓고있던 사야의노래.
슈타인즈게이트로 유명한 Nitro+(니트로플러스)에서 2003년에 만든 그 "사야의 노래."
안좋은 의미로 유명한 게임이었기에, 예전에 스팀에서 구입만 해놓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이제서야 플레이하게 되었습니다.
사야의 노래 |
사야의노래를 플레이하고나서, 그리고 우로부치 겐
일단 모든 엔딩을 클리어하고나서
인류의 입장에서 봤을 때 주인공은 완전히 인류의 배반자다.😅
주인공에게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긴 하지만.
확실히 소문대로 도중에 고어한 장면도 나오긴 했지만.
2003년에 발매한 게임인걸 감안했을 때의 이야기지
지금 보면 그렇게 충격적일 정도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플레이타임도 4시간 정도면 모든엔딩을 볼 수 있을정도로 꽤 짧은편이었는데
스토리는 내 취향에선 조금 벗어났지만, 짧고 굵게 간다는 인상이었다.
이게 우로부치 겐인가 하고 느꼈던 점은.
이 게임엔 해피엔딩이란게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엔딩에서도 주인공인 후미노리와 히로인인 사야는 뭘 어떻게 해도
'둘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해피엔딩에 도달 할 수 없다.
사야의 노래에는 엔딩이 3가지 있는데 그 중엔
결국 사야로인해 인류가 멸망하는 엔딩.
하나는 주인공인 후미노리는 일상으로 돌아오지만(감옥행), 사야와 이어지지않는 엔딩.
그리고 다른 하나는 헌터에게 사야가 죽음을 맞이하는데,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그나마 이것이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겠다.
플레이하고나서 문득 머릿속에 든 생각!
우리가 느끼는 시각, 후각, 청각, 촉각, 미각의 오감은
뇌의 전기적 신호라는건 많이 알려져있다.
그러나 사야의노래는 거기서 한번더 꼬아서
우리가 보고 느끼는 모든것이 일종의 유저친화적 인터페이스일 뿐이라면??
무슨말이냐면, 사람은 몸에 이로운걸 맛있다고 느끼고.
해가되는건 맛없다고 느낀다는 말이 있다.
주인공인 후미노리는 사고로 뇌가 망가져 수술을 받다가
인간으로서 중요한, 본능적인 기호를 관장하는 부분이 손상되게 된다.
그래서, 주인공에겐 평범한 사람은 냄새나는 고깃덩어리 괴물로 보이게되고,
괴생명체인 사야는 예쁜 미소녀로 보이게 된다.
주인공의 시각뿐만이 아니라 오감이 모두 그렇게 변하게 된다.
사야의노래를 플레이하고나서 얼마전에 유튜브 너진똑에서 본 내용이 떠올랐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또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로다.
다시보니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이걸 사야의노래를 플레이한 내가 멋대로 해석해보면,
내가 보기에 산은 산이맞고, 물은 물이 맞다.
하지만 그건 내 관점에서만 바라본것일 뿐으로,
물고기에게 물은 XYZ축 이동이 가능하며, 숨을 쉴수있는 삶의터전이지만.
물밖은 이동도 힘들고 숨조차 쉴수없는 죽음의 공간으로
나의 생각과는 이렇게나 다르다.
하지만 그 이상 깊게 생각하는것을 그만두었다.
결국 나는 나이기 때문에.
예를들어, 나는 인간이기 때문에 여름의 푸르른 산과
가을의 단풍으로 울긋불긋한 산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빨간색과 녹색의 구분이 힘든 적록색약인 개의 눈에는
여름이나 가을이나 크게 다를거없는 산으로 보일것이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자기손바닥의 감촉이 부드럽다고 느낀다고 해도.
굳은살없는 육구를 가진 집고양이가 느끼는 인간 피부의 촉감은
사포처럼 거칠다고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는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다라고 생각하며 그래왔던대로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 그건 극히 치우쳐진, 세상에 비해서는 너무나도 작은, 나라는 개인의,
인간들만의 티끌같은 편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