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원래 무교였고, 신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믿는다는 말입니까?
인간을 만든 존재 또한 신이라면,
인간이 이렇게 불완전한 이유는
신 또한 완전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종교는 사람들을 쉽게 통제하기 위해 인간이 발명해낸 것.
단순히 사회적인 이득, 또는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
가지게 되는 것. 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목적론적 증명을 접하고 거기에 대해 고민해 보고 나서
저의 생각이 조금은 바뀌게 되었습니다.
조물주는 존재하는가?
이 세상은 시뮬레이션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근거는, 물질이 관측되기 전에는 확률로서 존재한다는
양자역학의 법칙이
컴퓨터 프로그램의 연산량을 최소화 하기 위해 사용하는
'최적화'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양자역학에 대해 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이 시뮬레이션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어느 정도 일리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조물주가 만들었다고 하는 이 현실,
누군가가 만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뮬레이션 세상.
여기서 조물주와 누군가.
이 둘은 모두 인간을 만든 조물주라는 뜻이 됩니다.
우리는 창조주인 신과 시뮬레이션을 만든 누군가를
구분할 수 있을까요?
이 글에서 알아볼 신은 존재하는지에 대한 논증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존재론적 논증, 그리고 목적론적 논증.
존재론적 논증은 글쎄...
존재론적 논증은 중세 신학자인 안셀무스라는 사람이 고안한
신의 존재 증명, 또는 본체론적 증명이라고도 합니다.
"이 세상에 신보다 뛰어난 존재는 없다.
그렇다면,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존재하는 편이 더 우월하다, 고로 신은 존재한다."
도무지 납득이 안되는 논리입니다.
중세 사람들도 그렇게 느꼈는지
프랑스의 고닐로라는 사람에게 이렇게 놀림받았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최고의 섬을 상상해 보라,
그런 섬이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존재하는 편이 더 멋지다.
그러므로 그 멋진 섬은 실제로 존재한다."
이 수준의 논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목적론적 논증은?
목적론적 논증은 좀 더 생각해 볼 법 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날 당신은 해변에서 손목시계 하나를 발견했다.
이때, 천문학적인 시간 동안 자연에 존재하는 금속 분자들이
저절로 결합되고 뭉쳐져 시계의 모양을 이루고,
엄청난 우연의 일치로 서로 조립되고,
시간까지 맞는 손목시계가 되어 지금 내 발밑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이 시계는 공장에서 만들어져 누군가가 구매해서
착용하고 다니다가 해변에 흘린 것을 내가 발견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다." 라는 것 입니다.
그렇다. 라고 한다면,
아직까지도 다른 생명을 발견하지 못한 이 드넓은 우주 안에서
너무 춥지도, 뜨겁지도 않아 생명체가 번성할 수 있는
골디락스 존에 지구와 태양이 위치하고,
지구의 크기와 질량이 적당해야 하면서도
물도 풍부하고, 자기장과 지각운동, 암권, 대기권, 수권이
조화롭게 공존해야 하며,
달과 같은 거대한 위성이 존재해야 하고,
그 달은 지구에게 앞면 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 등등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란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천문학적인 확률
우연의 일치투성이입니다.
이걸 "희귀한 지구 가설"이라고 합니다.
이런 천문학적인 확률로 세상과 우리가 존재하는 것보다는
이 세상과 우리를 만든 조물주,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하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일단 저는 확신까진 아니지만, 신이 존재하는 것이
합리적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을 만든 조물주가
기독교의 하느님일 거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문득 들지만,
우리의 조물주가 어떤 신인가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무교였던 제가 이제 와서 교회를 다닐 생각은 없지만,
성경은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신은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건 바로 무한 원숭이 정리입니다.
무한 원숭이 정리란,
"영원히 사는 원숭이에게 타자기를 줘서 계속 두들기게 한다면,
언젠가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전집을 칠 수 있다."
라는 내용입니다.
확률은 0이 아닙니다.
"0이 아니니까 언젠가는,
원숭이도 셰익스피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2024년 11월 4일. 호주 시드니 공과대학에서
과학 저널에 발표한 '유한 원숭이 정리 계산' 연구논문에서는
1마리 대신, 20만 마리의 원숭이가
우주의 수명인 1구골(10의 100제곱)년 만큼
계속 타자기를 두드린다고 가정해도,
책을 완성 시킬 수는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얼핏 보면 원숭이는 무작위로 타자를 칠 것이기 때문에
확률은 0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완전 무작위가 아닌 아무 버튼에 손을 올려두고
가만히 있는다던지. 타자기를 내려친다던지 같은
의미 없는 행동을 하기 때문에
'나는 침팬지며 고로 나는 존재한다'와 같이 짧은 문장조차도
만들어낼 확률이 1000억 분의 1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원숭이가 셰익스피어 희곡 전집을 만들어내는 것은
분명 확률적으로는 가능한 일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그전에 우주의 수명이 먼저 다하게 될 것이므로.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원숭이는 셰익스피어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로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즉, 이 세상은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우연히 생겨났다고 믿는 것보다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입니다.
"그건 아직 현대의 과학기술이 부족해서 나온 확률일 뿐이다!
앞으로 과학이 점점 더 발전하게 되면 결국에는 인과관계를 밝혀내
더 이상 우연의 일치라고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뭐 어떻습니까.
우린 아직 우주는커녕 바다와 우리 머릿속의 뇌조차도 다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잖습니까.
아니면 그냥 저의 변덕스러운 무의식이
신이라는 존재를 믿고 싶어진 걸지도 모르겠네요.